농촌환경선교위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삼남연회 진주지방회
성지순례와 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서(교회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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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된 농환위 탐방을 갑니다.

이번회기 교회탐방은 성지순례(전남 화순 등광리, 도암 이세종 선생 생가와 기념관,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님)와 광주시 신도시 지역에서 문화선교(도서관, 책방, 까페)를 하고 있는 숨쉼교회를 방문합니다. 도시나 근교에 있는 분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1박보다는 당일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당일로 다녀옵니다.

일시 : 2016년 2월 11일(목) 오전 8시 강남교회 출발(함양,거창쪽에서 가시는 분이 더 계시면 함양쪽에서도 출발할 예정임) 

장소 : 전남 화순군 등광리 이세종 선생 생가 및 기념관, 기도처,  광주시 수완지구 숨쉼교회(안 석목사) 

* 이세종, 이현필 선생님에 대한 소개는 아래 첨부한 내용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준비물 : 따듯하고 편한 옷 
참가신청 : 2월 10일(수)까지. 차량과 식사 관계로 신청을 미리 해주시면 준비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문의 : 노재화 목사(010-3717-7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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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사람 이세종 선생(이현필의 스승)

 [출처] 참사람 이세종 선생, 맨발의 성자 이현필|작성자 솔로


성자 이현필을 알려면 먼저 그의 믿음의 스승인 이세종부터 알아야 한다. 스승 이세종은 제자 이현필과 같은 전남 화순군 도안면 사람이다.

그는 1820년에 태어나서 1942년 62세로 해방을 보지 못하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갔다. 그는 무척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남의 집 머슴사리로 지내야 했다. 그러니 글을 배운다는 것은 그에게 실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어깨너머 동냥글로 겨우겨우 한글을 깨우쳐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 그는 새경(머슴살이로 받는 몫)으로 겨우 식구들을 먹여살리며, 논마지기를 장만해서 형을 장가들게 해주었다.

충실히 머슴살이를 하면서 자신의 집과 땅을 마련했을때 그는 이미 40 이 넘은 노총각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집안의 어린 처녀 하나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장가든 후에도 그 부지런함과 성실함에는 변함이 없어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이루었다. 그 때 수십마지기(한마지기는 200평)의 논밭을 스스로 장만하였다.

어느 해는 도암면에 심한 가뭄과 흉년이 들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 때 이세종은 자신의 곡간을 열어 면민들의 구황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간 자기에게 빛진 이들을 불러모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빛문서를 불태우고, 빛을 몽땅 탕감해 주었다(회심한 후의 톨스토이를 연상케 함). 그의 덕행에 너무 감동한 채무자들과 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자진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그러나 이세종은 너무나 겸손한 사람인지라 굳이 사양하고 그 송덕비를 땅속에 묻었다. 이세종은 천성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지만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을 버릴수가 없었는지라 그는 자식을 갖지 못함에 대한 시름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종족보존에 대한 원의가 늘 자신을 괴롭혔다.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해보았지만 모두 다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지의 집에서 우연히 성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성경을 빌려다가 집에서 틈나는데로 읽기 시작하였다.

구약을 다 읽고 신약을 읽게 되었을 때 예수와 사도 바오로는 혼인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존재를 깨우치고자 자신의 목숨조차 기쁘게 바친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제껏 자신은 밤낮으로 자식얻기만을 생각한것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자신자신도 예수처럼 하나님을 위해 금욕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허나, 이세종의 젊은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멀리하고 밤낮으로 성경 읽기에만 골몰하는 것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더구나 자식도 없이 단 두 내외가 사는데 남편이 자신을 멀리하고 동침을 안해주니 도무지 사는 재미가 없었다. 아내는 참다 못해 입은 옷을 그대로 걸치고 가출해 버렸다. 집 나간 아내는 자신이 오갈 때 없는 과부라며 어떤 홀아비를 만나서 새살림을 시작했다.

아내가 나간후 이세종은 손수 가사일을 돌보며 더욱 깊이 신앙 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문으로 아내가 어느 마을 어떤 홀아비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맨손으로 나간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과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사람을 시켜서 아내가 입던 옷이며, 쓰던 물건과 얼마의 돈을 가져다 주었다. 그 물건을 받고 정말 놀란 것은 이세종의 아내가 아니라 그와 살던 그 홀아비였다.

그는 이세종의 아내에게 오갈때 없는 과부라고 자신을 속인것을 나무라며 당장 본 남편에게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이세종의 아내는 다시 본집으로 돌아왔다. 이세종은 다시 돌아온 아내를 친정집에 다니러 온 외동딸 처럼 따뜻히 맞이해 주었다. 허나, 아내를 멀리하기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자 젊은 아내는 또 견디다 못해 다시 집을 나가버렸다. 그녀는 어떤 가난한 홀아비를 만나 전처럼 살았다.

얼마후 가난하여 끼니도 잇기 어렵다는 소문을 들은 이세종은 자신이 직접 쌀가마니를 지고 집나간 아내를 찾아갔다. 그런데 찾아온 본 남편을 아내는 보자마자 물 한바가지를 들고 나와서 그에게 퍼부었다. 소박맞은 여인의 한풀이였다. 물벼락을 맞고도 이세종은 화를 내지 않고 정중하게 '당신을 생각해서 쌀을 좀 가지고 왔으니 받아주시오'라고 했다.

구약 성경의 호세아처럼 이세종은 늙어가는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간 바람난 젊은 아내에게 양식과 의복을 가져다 주고 또 새남편된 사람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열심히 전도하였다. 자기를 버리고 간 아내가 그에게는 오누이처럼 느껴졌다. 이세종은 오롯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복음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였다. 더 나아가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사람에게 가르치고자 애썼다. 그의 삶은 절제와 순결, 생명존중, 겸애와 평등의 생활이었다.

참된 신앙인이 되는데는 많은 지식이 필요없다는 것을 이세종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앙은 지성으로가 아니라 심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 삶으로 실천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안에서 평생을 봉헌하였다. 진리 자체요 사랑이신 하느님을 모르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되어 참된 것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은가...

無知의 知를 지닌 無學의 성자 이세종을 존경하여 그에게 참지혜를 배우고자 한 사람 두사람씩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믿음과 끈기가 뛰어난 이현필이 이세종의 뜻을 이어 우리나라 토착 수도원인 동광원을 창설했다. 그는 이세종의 정신을 이어받아 빛고을(광주)의 성자가 되었다. 이세종은 1942년 62세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갔다. 임종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중에 자기를 버린 옛 아내의 몫도 남겨 두었다.

이세종의 옛 아내는 이세종이 남겨 준 유산으로 살다가, 임종 때에 하는 말이 '내 남편 이세종이 정말 살아있는 예수님인 것을 모르고 내가 그에게 배은망덕을 저질렀습니다'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세종이 죽은후 많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성자로 받들게 되었다. 그 중에 수제자인 이현필이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이현필이 이세종을 처음 만난 것은 1934년 이현필의 나이 21세, 이세종의 나이 54세였을 때였다. 이현필은 12세에 기독교에 입회, 16세에 서울 YMCA에서 영어와 성서를 공부하고 20세에 교회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해준것은 스승 이세종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현필은 동방의 성프란치시코라고 했다. 또한 多夕 류영모선생은 이현필을 성자라고 칭하면서 영적인 벗으로 깊이 사귀었다.


** 참고도서/ '맨발의 성자 이현필' 엄두섭 목사지음, 은성출판사

‘맨발의 성자’ 이현필

한국기독교 120년 숨은 영성가를 찾아…이세종 선생에 감화해 수도, 신분 불문 누구나 귀히 여겨

전북 남원 지리산 서리내. 원래 이름은 선인래(仙人來)로 신선이 온다는 산골짜기였다.

이곳을 찾아온 이현필(1913~64)은 기도하러 숲 속에 들어가면 그대로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어버렸다.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채 꽁꽁 언 그의 머리 위 하얀 서리에서 아침 햇살을 받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면, 새가 날아와 목석인 듯 쪼아댔다

배고픈 그 시절 그는 “내가 먹으면 다른 사람 먹을 몫이 줄어든다”며 굶기를 밥 먹듯했다. 뱃가죽이 늘 등에 붙어 있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눈이 가슴까지 쌓인 어느 날 새벽 남몰래 길을 나섰다. 3일 동안 먹은 것이라곤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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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던 여성수도자 금남은 행여 이 선생이 눈밭에 쓰러지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어 다른 동료 한명과 몰래 뒤를 밟았다. 눈이 너무도 많이 와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벼랑 끝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현필은 사뿐 사뿐 날듯이 나아갔다. 둘은 선생의 발자국만을 밟으며 따라갔다. 이현필은 그렇게 오감산까지 무려 40리를 걸었다. 오감산 산막에서 홀로 수도 중인 제자가 눈 속에서 얼어 죽지 않았을까 밤낮으로 기도하다가

몸소 눈밭을 헤치고 그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 남원동광원에서 이현필을 따르는 30여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김금남(79)원장은 스승을 회고하다 그의 사랑이 다시 느껴지는 듯 한동안 입술을 떤 채 말을 잊지 못한다.

이현필은 대중설교를 하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예수처럼 대했다. 그는 광주와 무등산 일대에서 여순반란사건과 6.25 뒤 거리를 떠돌던 수많은 고아들과 폐병 환자들을 거두었다. 그는 맨발로 눈길을 걸으며 탁발을 해서 고아와 환자들을 먹이면서 돌보다 결국 자신도 폐병에 걸려 51살에 귀천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프란체스코와 이현필을 평생 탐구해온 은성수도원 창립자 엄두섭 목사는

“이현필은 프란체스코와 비교해 봐도 누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인물”이라고 평했다. 또 함석헌의 스승 유영모는 아들뻘인 그한테서 빛을 본 뒤 광주(光州)를 빛고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를 들은 함석헌에 의해 빛고을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현필은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서 태어났다.

10대부터 기독교를 접해 전도사 생활을 하며 평범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도암의 성자’ 이세종을 만난 뒤였다.

이세종은 “나 같은 사람이 또 하나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가 바로 이현필이었다.

이현필은 스승처럼 아내와 육적인 관계를 단절하고 정절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화순 화학산에서 4년, 지리산에서 3년간 기도하던 중 신비체험을 통해 거듭났다. 그때부터 그의 눈은 육안에서 영안으로 바뀌었다. 광주에서 600명의 고아들을 돌볼 때 그를 따르는 동광원 식구들은 자기 자식들을 고아들 속에 넣어 똑같이 길렀다.

걸인이나 창녀를 대할 때도 그는 천사처럼 귀히 대했다. 높고 낮고, 더럽고 깨끗한 육안의 시비 분별을 벗어난 영의 눈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든 어떤 물건이든 천히 여기면 자기도 천해진다고 했고, 사랑과 생명은 하나요, 사랑과 빛은 하나이며 십자가의 피는 사랑이요, 생명이라고 했다.

그에겐 기도시간이 따로 없었다. 삶이 곧 기도요. 일이 곧 기도였다. 모든 것은 자급자족이었다. 그는 배부를 때 배고픔을 대비하라고 했고, 살아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라고 했다. 이처럼 철저히 미래를 준비하게 했고, 실내로 들어갈 때도 언제든 나올 때를 대비해 바깥쪽을 향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들어가는 준비성이 몸에 배도록 했다. 또 밥을 먹을 때 한 숟가락씩 덜어 굶주리는 사람을 돕자는 일작운동을 펼쳤다. 이런 동광원의 훈련은 박정희에 의해 새마을운동 초대 연수원장으로 초빙된 그의 제자 김준에 의해 새마을지도자 훈련으로 이어졌다.

결핵환자를 돌보다 결핵에 감염돼 피골이 상접한 그를 업고 다녔던 한영우(78) 장로는 “선생님은 의인은 교회 안만이 아니라 장돌뱅이 가운데도 있다고 했다”며 “그의 사랑은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우주적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광주 귀일원에서 중증장애인을 돌보고, 전북 남원, 장수, 경기도 벽제, 광주 무등산, 전남 화순, 함평, 진도 등에서 노동수도공동체를 일구어 호의호식과 출세와 성공과 승리의 대로가 아니라 절제와 양보와 헌신의 좁은 길을 말 없이 걷고 있다

노재화 조회 3,169회 2016-02-0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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